제목 : 저는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위로 였으면 좋겠습니다.
본문 : 고린도후서 1:3~7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매주 금요일 수원역 거리에서 복음 선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 말고 기타리스트창수형제와 우리 전도사님이 매주 금요일 함께 찬양을 하고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도 수원역 거리에서 열심히 찬양하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찬양하고 복음을 전하는데 지나가던 한 어르신이 전도사님께 말을 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대수럽게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찬양하고 복음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약속한시간이 다되어서 정리를 하고 가려고 하는데 전도사님께 말을 걸어오신 그분이 다시 와서 전도사님께 격양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을 무슨 날인줄 알고 이렇게 나와서 큰 소리로 찬양하고 웃고 떠드냐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그 분의 말씀을 오늘이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난 받으시고 죽은 신 날을 기념하는 날“성금요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날을 이렇게 큰소리로 찬양하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경건하게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통을 지키는 일은 저도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통이 그 본래의 뜻을 넘어서 그 전통이 그 본래의 뜻을 제안하고 그 본래의 뜻을 맞고 있다면 그 전통은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사순절의 의미 부활절의 의미 이것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시간이 나면 사순절의 의미 부활절의 의미 검색해서 찾아보시면 두꺼운 신학서적을 찾지 않아도 요즘은 인터넷에 검색만 하더라도 수도 없이 많은 자료들을 찾아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어르신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이 어쩌면 정말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사순절과 부활 주일을 기념합니다. 좋은 의미이고 좋은 뜻 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순절 부활 주일이 웬말이냐?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봅니다.
기독교의 핵심, 우리 믿는 자들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무엇이라 꼭 집어서 말할 수 없지만 기독교의 핵심을 말하라고 한다면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사순절을 우리가 지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고 그 기간 동안 삶을 돌아보고 금식하고 절제하고, 좋은 뜻 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사순절보다 예수님의 부활을 더 말하고 싶고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 믿는 자들은 헛된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최고이지 죽음 이후에 부활이 없다면 저는 믿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에 이런 전통도 저는 좀 잘 못되지 않았나 바꿔야 되지않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부활인데 우리는 부활보다 예수님의 고난 십자가에 더 빠져들기를 원합니다. 사순절의 기간이 얼마입니까? 40일입니다. 부활 주일은 얼마나 됩니까. 고작 단 하루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부활을 강조하지만 그 부활을 기념하는 날은 고작 단 하루에 불과합니다. 저는 이음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기쁨 신앙으로 365일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제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고린도후서를 보면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서 고린도교회와 오늘날 저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고있습니다.
3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대해 더욱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이렇게 시작하는데 제가 본문을 계속해서 보는데 이 앞부분에서 잘 나가지를 않더라구요. 찬송하리로다. 전형적인 유대적 인사입니다. 이 문장은 헬라어로 번역하면 “율로게토스 호 쎄오스”, “하나님을 송축하라”입니다. 그리고 시작되는 문장의 구조가 “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을 말할 때 왜 이런 식으로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라고 소개 하고 있는 것입니까? “율로게토스 호 쎄오스”, “하나님을 송축하라”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왜 그렇게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입니까? 4절 까지 같이 볼까요?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무슨이야기 입니까?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왜 하나님을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라고 소개 했냐면 하나님은 아버지로써 자신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고통을 격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어떻게 죽으셨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고통을 아시는 분의 위로가 참 우리 마음까지 다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진정한 참 위로는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 가운데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켜, 고난을 승리로, 죽음을 승리로, 사망을 생명으로 바꾸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는 자의 가장 큰 위로는 무엇입니까? 자식이 잘 되는거요? 교회가 잘 성장하는 거요? 좋은 직장에 가서 돈 많이 버는거요? 좋은 사람 만나는 것요? 좋은 음식 먹는 거요? 1년에 한 번씩 해외 여행 다니는거요? 물론 이런 위로와 기쁨도 우리에게 주어 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자들의 진정한 위로는 우리의 본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죽으면 갈 집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부터 성경 어디어디를 다 찾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보다 더 큰 위로와 기쁨이 있는지? 있으면 한번 말씀 해주십시오.
5절입니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라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받는 그 십자가의 사랑이 정말 말도 안되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자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죽으신 그 사랑 넘쳐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같은 자가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데 나를 사랑하실 뿐만아니라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이 넘쳤다고 하는 표현 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 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해서 우리, 누릴 수 없는 자가 누리게 된 그 부활이 이 땅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나그네 인생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위로가 넘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산 부활의 소망을 믿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위로 일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가,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달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전부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주님을 내 삶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지만 내안에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명예를 사랑한다면, 나를 내려놓지 못한다면 부활은 그저 어떤 덕망높은 위인의 죽음이요 그 사실에 불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여러분의 삶에 가장 중요한 이야기요 가장 필요한 내용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 다음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로써 어떤 고백을 합니까?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이 부활하신,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그의 삶이 어떻게 됩니까? 성공을 거둡니까? 실패를 거둡니까? 인간적인, 세상 적이 잣대로 본다면 바울은 그저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자리를 다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자신의 영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육신적인 부분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고린도후서를 보면서 매번 우리가 함께 보았던 바울의 고난이 8~9절에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여러분 속에 얼마나 자리 잡고 계십니까?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니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 말씀이 이 말씀의 권세가 이 말씀의 능력이 여러분 속에 충만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여러분 바울에 삶속에 충만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이 여러분 속에도 충만하여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일에 혹 환난을 당하더라도 그 환난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그런 충만함이 여러분 속에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혹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해서 복음을 전하고 전도를 하고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환난과 고난 낙심 의심 어려움이 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망이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위로가 여러분 속에 충만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바울의 삶처럼 삶의 무슨 일을 만나더라도 그것이 죽음이 기다리는 일 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영원한 주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로써 하나님의 위로와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제가 오늘 준비한 영상이 있습니다. 이 영상을 보신분도 계실 것 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는 어떤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 영상을 보실 때 이 할머니의 표정과 이 할머니 속에 충만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위로와 기쁨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쩌면 우리네 삶의 형편이 비슷비슷 할 것입니다. 뭐 재벌 2세가 아닌 이상이요. 저는 여러분이 잘 되고 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저와 여러분이 소망하는 것이 이 땅의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을 어떻게든 살아가야하지만 천국을 소망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부활의 기쁨이 그 위로가 여러분 속에 충만하여서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어떤 상황가운데 있더라도 주님. 주님으로 충분합니다. 주님으로 만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다다. 예수면 다다 이렇게 고백하는 믿는자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우릴 위해 죽으신 주
축도
전능하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하심이 보잘 것 없는 우리 부족한 인생 가운데 찾아오셔서 나보다 앞서 먼저 나를 사랑하시고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 죽으시고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 기쁨이 우리에게 충만 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돌아가는 이음교회 성도님들과 함께한 모든 자 머리머리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위로 하심과 기쁨이 지금으로부터 영원히 충만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