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어떤 직무를 받으셨습니까?
본문 : 베드로전서2:4~6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사랑하는 여러분 한 주간 여러분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한 주간을 보내셨습니까? 혹 어려움을 당하고 이해 안되는, 해석이 불과한 일을 당해서 악독과 기만 외식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로 가득차서 한주의 삶을 망치지는 않았습니까?
성경은 혹 이런 환경가운데 처한 우리에게 어떻게 도전하였습니까?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라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어떻게 하라구요? 갓 태어난 아이가 젖을 찾아 죽을 것처럼 울 듯이 순전하고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을 찾고 말씀의 신령한 것들로 삶을 채우라고 말씀하시고 또 그 이유는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어진 믿음으로 열려진 그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주의 인자하심을 기억하며 이 한 주간을 보내셨습니까? 아마도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주 우울한 한주가 되었을 것입니다. 한국이 스웨덴에게 1:0으로 지고 말았습니다. 저도 한국 사람이라 너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런데요 한국이 진것보다 더 안타까운게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반칙을 해서 상대에게 페널티킥을 허용한 수비수 김민우에 대한 악풀입니다. 어떤 악풀이냐면 당장 추방시켜라, 당장 탈락시켜라 그리고 청와대에 청원까지 넣었습니다.
영상을 잠깐 보실까요?
축구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은 축구가 전부이죠 하지만 그게 무엇입니까? 김민우라는 축구 선수는 이제 1990년 생입니다. 우리는 1990년 이라면 나이가 계산이 안됩니다. 28세 입니까. 27세 입니까?
이 완전 애기가 앞으로의 삶의 짊어지고 가야할 일들이 많은데 그 아이가 감당하기 너무도 버거운 일입니다. 우리가 해야하는 일들이 무엇입니까? 응원하는 것입니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그럴 수 있다고 말하며 수고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살면서 얼마든지 경우는 다르지만 이런 일을 당하고 격게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말씀에 이 땅에 부르심에 잠겨 있지 않으면 우리마음에는 어떠한 말이 담겨서 우리 입을 통해서 나 올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을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그 첫 번째는 예수님을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버린 바가 되었다는 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셨으면 사람들이 호산나 외치며 열열이 환호 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종려가지를 흔들며 그를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하였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우리에게는 이런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길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외치고 삶을 낭비하는 것이 비난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저를 비난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소리를 듣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말하자면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비난 받고 사람들에게 버린 바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 믿고 사랑하면서 비난 받을 만큼 예수의 이름을 삶 가운데 외치고 선포했는지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믿는 자로써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십자가의 무게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믿는 자로써의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냥 예수는 믿지만 “내가 믿는 것을 주위에서 알게하지 말라” 라고 외치며 살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두 번째는 예수님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지만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을 해석하려면 먼저 산 돌의 역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오늘 예수님을 산 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산 돌이신 예수님이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배롭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티모스)는 '존경받는, 영예로운', '귀중한, 소중한, 가치 있는'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5절에 보시면 그 돌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절 이하에 보시면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 되는 것입니까? 너희가 예수님을 믿는데 너희의 삶이 예수님처럼 거룩하고 신령한 산돌이 되어서 제사장이 되어서 이 땅에서 예수 믿고 믿음으로 삶을 살아갈 때 보배롭고 존경받는 영예로운 귀중한 소중한 가치 있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거룩한 산 돌이신 예수님처럼 너희도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너희도 버린 바가 될 수 있다. 우리 눈에는 그 길은 희색의 길이로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다가도 십자가에 달려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도 너희는 이 땅을 살 때 그렇게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라.
6절입니다.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예수 믿으면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이고 싫음을 당하는 일이고 버림바 되는 일인데 왜 성경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소망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가지고 심판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사는 날은 한 날에 불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소망하는 자입니까? 이 땅에 것을 소망하는 자들이라면 여러분은 부끄러움 당하는 것을 버린 바 되는 것을 견디지 못할것입니다. 시시때때론 우리를 찾아오는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는 악독과 기만 외식 시기 모든 비방하는 말들을 내 놓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이 종말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도 예수님처럼 보배로운 산 돌이 되어라, 집을 이루는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그 돌이 되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땅에 어떤 집을 짓고 있습니까? 육신의 안위를 위해서 집을 짓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야 내가 내 삶을 받쳐서 짓고 있는 집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집이야!” 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 주위에서 여러분을 누구라고 부릅니까? 아 저 사람은 자기 집만 열심히 짓는 사람이야 다른 사람을 당췌 돌아보지 않아, 아 저 사람은 분명 하나님을 소망하는 믿음의 사람이야!
그런데요 성경은 우리에게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사장의 직무가 무엇입니까?
구약에는 지성소를 돌보는 일을 하였습니다. 지성소를 돌보는 일은 즉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요 예수님께서 친히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깨끗게 하셔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사장의 직무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은 거룩한 제사장의 직무는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다고요? 진정한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을 그의 회개를 삶을 통해서 주님의 살아계심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외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처럼 길에 서서 찬양하고 복음 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영역에서 얼마든지 주님을 외치고 전할 수 있습니다. 물론 피곤한 일이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통해서 주님을 알게 하고 만나게 하는 제사장의 직무를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무엇이 있습니까? 교회라는 집을 세울 때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쉬운 일입니까? 어려운 일입니다. 교회에 와서 교회를 이래야해 저래야해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면 그 사람은 절 때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이 그냥 이상만 말하는 사람입니다. 조용히 묵묵히 이 지역에 공동체가 세워 졌으니 신령한 집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수 있도록 공동체를 세워나가고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사장의 직무는 주님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딱 꼬집어 이거 하나 라고 말 할 수 없지만 저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통로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는데 그 돌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이음교회를 통해서 이음공동체를 통해서 위로 받고 기쁨이 성령의 충만함이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이 지역에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거룩한 산 돌의 역할을 감당하는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는 지역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잇고 불신자와 믿음의 신자를 이어서 하나님을 만나고 삶의 진정한 회개가 일어나고 제사장의 직분을 온전히 감당하는 그런 교회 그런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6절입니다.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않고 우리 모두가 주님의 영광의 얼굴 대면하며 구원을 이루는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조용히 눈을 감고 묵상해 볼까요? 여러분은 어떤 직무를 이 땅에서 받으셨습니까?
직무 받았는데 모르고 사셨나요? “주님 저는 그런 직무 받은 적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받은 직분이 바로 이 제사장의 직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진정한 회개가 내 삶의 깊이 일어나고 계십니까? 회개의 삶을 이야기 할 때 소개 했던 성경의 인물이 누구입니까? 삭개오입니다. “주님 제가 저의 제산의 절반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부당하게 취한 것들이 있다면 4배나 값겠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에 임하는 삶, 여러분의 직장과 만나는 사람 공동체에 구원이 임하는 삶 제사장의 직분 감당하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