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참 선지자 예레미야와 거짓 선지자
하나냐의 대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통해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세상이 혼란할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거짓된 평안보다 진실한 회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냐는 시드기야 왕과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했습니다.
그래서 왕과 백성은 그의 말대로 이 년 안에 바벨론 왕에게
자유를 얻고 성전의 기물을 다 찾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거짓된 말로 거짓된 희망을 주는 것은 더 악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징계와 그 징계를 통해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거짓을 믿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들어야 합니다.
죄를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주님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해결하지 않고 세상의 평안을 누리려고 해도
갈수록 두려움과 근심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가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돌이키기 원하십니다. 거짓된 평안을 말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도 세상에서 잘 될 것이라고 속이는 자들의 말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면서도 세상에서 잘 될기를
바라는 잘못된 기대를 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바로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날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둘째, 피하려는 징계보다 엄한 징계를 받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꺾어
버렸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들을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들을
만들었느니라." (13절)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멍에가 가볍다고 자신의 힘으로 멍에를 꺾으면 하나님은
더 크고 무거운 멍에를 지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자기 힘이나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더 큰 연단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일으켜 유대를 징게하시는데
유대 왕들은 애굽이나 다른 힘을 통해 바벨론을 이겨내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더 큰 수치와 더 큰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이런 사건을 통해 깨달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 생각과 힘으로 버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길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잠깐 허락하신 시련 속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기보다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어떤 시련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셋째, 세상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하나냐는 시드기야 왕과 백성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백성에게 소망을 주고 자신감을 주는
예언을 했으니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그가 그런 거짓
예언을 할 때 뜻밖에 예레미야는 이런 말을 합니다.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가 예언한 말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성전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 곳으로 되돌려 오시기를 원하노라."(6절) 예레미야도
백성이 속히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친히 주신 말씀만 전했습니다.
백성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고 사람에게 인정을 받지 못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선지자답게 살았던 것입니다.
결국 이 년 안에 바벨론에서 자유를 얻을 것이라고 외쳤던
하나냐는 하나님의 진노르 거짓 예언을 한지 두 달만에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
하지 말고 진리를 바르게 선포함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성도들도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
고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려 하지 말고 진리를 따라 살면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