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3월 22일 오늘의 묵상
2024-03-22
설교일시
2024. 3. 22
설교본문
막14:1-11
설교자
안용호 목사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죽일 방도를 

구하고 있는데 한 여인은 예수님을 위해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 가치는 무려 삼백 데나리온입니다. 

오늘로 말하면 건장한 남자의 일 년 연봉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여인이 행한 일을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말하여 이 여인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9절)


왜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일을 기억해야 할까요?


첫째, 주님을 향해 진실한 사랑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시고 

계셨습니다. 시몬은 나병에 걸렸다가 다 나아 집으로 

돌아온 사람이며 이 일을 감사하며 예수님을 초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끄려 예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3절) 왜 이런 일을 했을까요?

이 일을 이해하는데 눅7장에 나오는 비슷한 사건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느 바리새인의

집에 식사를 초대받으셨습니다. 그 때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와 예수님께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믈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 여인의 행위를 예수님은 사랑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은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여인은

아까울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자에게 아낌 없이 다 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 옥합을 깨뜨려 나드 향유를 부은 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당신은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세상의 어떤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십니까?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그리고 목숨을 다해 사랑하십니까?

생명까지 드릴 만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을 위해 드려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참된 사랑은 최선을 다해 드립니다. 드릴 때 적당히 

드리거나 드린 후에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참된 사랑의 증거가 아닙니다. 

당신이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선은 무엇입니까?   


둘째, 주님을 위해 한 번의 기회를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께 값비싼 향유를 붓자 사람들이 화를

냈습니다.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도다."(4-5절) 그런데 같은 사건을 기록한 요12:4-5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요12:6은 그렇게 말한 가룟 유다의 진심을 밝혀줍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있는 것을 훔쳐 감이라." 

사실 주님께 드리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는 것은 다른

속셈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주님보다 다른 목적으로 

쓰이면 명분은 그럴듯 하지만 배후에 자기 욕망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왜 주님을 위해 쓰는 것을 가까워합니까?

주님과 그의 뜻을 위해 쓰는 것이 낭비라면 거룩한 낭비입니다.

그 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에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7절) 

본문은 예수님께 드릴 것인가 아니면 가나한 자들에게

나눌 것인가를 따지는 게 아닙니다. 항상 도울 수 있는

사람과 지금 단 한 번밖에 없는 기회에 주님께 드릴 것인가

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쓰시겠다 할 때 드려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을 때 일해야 합니다. 

때를 놓치지 마십시오.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주님을 위해 드릴 수 있을 때 드려야 합니다. 

이 여인은 특별한 기회에 그렇게 주님을 위해 아낌 없이

드린 것입니다.    


셋째, 주님을 향해 대속하신 죽음을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향유를 허비했다고 책망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6절)

6절에서 좋은 일은 원어로  말하면 아름다운 일입니다.

향유를 부은 일이 왜 예수님께 아름다운 일입니까? 

예수님은 뒤이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8절)

사실 이 여인이  매우 비싼 나드 한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부은 속내를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주님은

이 여인의 향유를 받으며 자신의 죽음을 위해 준비한 것으로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주님은 그리스도로서 오신 뜻을 온전히

이루십니다. 이 여인이 부은 향유를 당신의 대속의 죽음을

위해 기름부은 것으로 여기시고 기뻐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당신이 드린 것은

무엇입니까? 영국의 하버갈 자매는 주님께 이런 찬송시를 

썼습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새찬송가 311장 1절)

이제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주님께 헌신을 결단하십시오. 

우리의 모든 것을 드려도 결코 아깝지 않은 주님을 위해 살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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