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우리가 살펴보게 될 요한계시록은
핍박과 박해를 겪는 배경 속에서 기록된
말씀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황제 도미티안에 의해
다스릴 때 그는 스스로를 신이라 선포하며!
모든 백성들에게 자신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이라 부를 것을 명령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 호칭하지 않는 자들은 모조리 잡아
고문하거나 죽이는 짓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다른 모든 로마 시민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도미티안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이라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어차피 당시
로마 황제는 신의 대리자로 여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구에게는 이 고백이
불가능한 고백이 되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들!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에게는 절대로
도미티안 황제를 향해서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이라고 고백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 앞에 놓인 운명은 당연히 모진 고문
핍박! 그래서 결국 순교의 길을 가거나!
아니면 타협하여 배교의 길을 가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사도 요한이
뭐라고 편지를 씁니까?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핍박 속에 있는 자들을 향해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라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구름 타고 오실 분을 “알파와 오메가”
또한 “전능한 자”라 소개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을 스스로
하나님이라 외치는 도미티안이 아니라!
온 세상의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우리의 아픔을 위로해 주실 것이다!
사도 요한이 모진 박해 속에 있는 자들을
향해서, 그 핍박으로 인해 죽음 앞에 서 있는
자들을 향해서 외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단시 다시 오실 하나님만을
선포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너무나 중요한
표현을 반복하는데,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 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과거, 현재 미래 순으로 기록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그런데! 왜 이제도
계시고-현재, 전에도 계셨고-과거 장차 오실
이-미래 순으로 사도 요한은 기록했을까요?
지금 이 순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도 요한이 의도적으로
기록했을 것이라 추측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오늘
나의 고통과 아픔을 아시는 하나님!
오늘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오늘 나를 위해 놀라운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 바로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이 믿음으로 오늘을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