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 날은 왕의 두 가지 조서가
내려진 날입니다. 먼저는 하만의 조서입니다.
그 조서의 내용은 유다인을 모두 진멸하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또
다른 조서가 내려졌는데, 그 조서의 내용은
유다인을 진멸하려는 자를 도리어 진멸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새로운 조서에 따르면 감히 유다인을
대항할 자가 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이제는
모든 민족이 유다인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어제 본문을 보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라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무려 오백 명씩이나
여전히 유다인을 대항하여 대적했던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여전히 눈치를 채지 못한
자들! 여전히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한 자들이
전국 각 지방에 무려 칠만 오천 명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유다인에 의해서 도륙을
당했다 말씀은 전합니다.
새롭게 왕의 명령으로 내려진 조서는 결코
유다인을 대적하는 자들을 함부로 죽이라는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유다인을 대적하려했는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들이 해야 할 일은
돌이키는 것이었습니다. 유다인을 대항할 것이 아니라
유다인과 화친을 맺어야 했습니다.
다른 많은 사람처럼!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이
되는 결정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심판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미련한 자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새롭게 내린 조서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아니 무시하고 감시 유다인을 대적한 것입니다.
그 결국이 어떤 것인지도 깊이 따져보지도 않은 채
그 결국이 어떨지 생각도 깊이 하지도 않은 채
감히 대항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들은 무참히
도륙을 당하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미련한 자들의 모습이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여전히 돌이키라고 수도 없이 손짓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의 뜻대로
자기의 마음대로 사는 자들이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예레미야 선지자 역시 여전히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는 자를 향해 이렇게 탄식하며 외쳤습니다.
예레미야 5장 21절입니다.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그렇습니다. 눈이 있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귀가 있다고 다 듣는 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어리석어 여전히 지각이 없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자! 아니 들을 귀를 닫고 있는 자
볼 눈을 스스로 가리고 있는 자가 혹시 나는 아닌지
돌아보길 바랍니다.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아듣는 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매 순간 하나님께서 뜻하신 자리에 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하나님 마음에 흡족한
자로 살아가는 우리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길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