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누가복음 20장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논쟁 거리가 되는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하나 답변하시면서
그들의 위선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어찌하여 그리스도인 자신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느냐고 물으십니다.(20:41)
구약 성경은 오실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부릅니다.
물론 육신적으로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이 다윗의 자손을 넘는 분이시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시며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지만
동시에 다윗의 주님이 되신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42-43절)
다윗도 예수님에게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어떻게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44절)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에는 예수님이 로마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유대를 다스리는
로마를 물리치고 구원하셔서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셨지만
유대인들이 바라는 메시아는 아니셨습니다.
유대인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예수님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자신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메시아이심을 말씀하시며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예수님을 판단하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원하는 유대인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메시아로 오셨다는 것을 깨우쳐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들의 외식, 겉과 속이 다른 것을 비판하시며
그들을,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십니다.(45-46절)
예수님은 긴 옷을 입고 다니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서기관들은 직무를 할 때 입는 긴 옷을
일부러 입고 다니며 대접받기를 즐겼습니다.
시장에서 문안을 받고 회당이나 잔치에서
높은 자리, 윗자리를 좋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일을 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잘 알았지만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 보다는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서기관들은 자신만을 사랑하고 자신만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결국 서기관들은 자신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지 않고 이웃도 사랑하지 않는
위선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서기관들처럼 위선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후에
부자들의 헌금과 과부의 헌금을 보시고
무엇이 올바른 헌금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을 넣는 것과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21:1-2)
두 렙돈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일당의
64분의 1에 해당하는 적은 금액입니다.
과부는 그렇게 아주 작은 금액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당연히 부자들이 과부의 헌금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헌금으로 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과부가 부자들보다
더 많이 헌금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부자들은 풍족한 중에 일부를 헌금했지만,
과부는 가난한 중에서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는 것입니다.
금액으로는 부자들이 드린 헌금이 훨씬 많았겠지만,
자신의 전부를 드린 과부가 더 많은 헌금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위선적인 서기관들이나 부자들은
자신이 얼마를 드리는지가 중요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금액을 드렸는지가 중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보다 두 렙돈의 적은 금액을 드린 과부가
더 많은 헌금을 드렸다고 말씀하십니다.
풍족한 중에서 일부만 드리면서도
내가 더 많이 드린다고 생각한 부자들보다,
적은 금액이지만 자신의 생활비 모두를 하나님께 드린
과부의 헌금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더 많은 헌금이라고,
더 귀중한 헌금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서기관으로 대표되는
유대인들의 위선을 고발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이 선택하신 선민이라는 생각에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며
자신들만을 위한 메시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예수님이 유대인만을 위한 메시아가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책무였습니다.
하지만 구약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시면서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임이 드러납니다.
율법은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 알려주지만,
율법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율법이 아니라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으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정결한 유대인들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토록 기다려온 메시아였지만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율법을 잘 지키는 자신들의 행위를 의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위로 의롭다하심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음으로써 우리는
의롭다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겉모습은 의인 같았지만
마음은 결국 죄인이었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죄인이라고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위선을 행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메시아,
우리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처럼 나의 어떠함이나 행위를 의로 삼을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우리의 의로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잊지 말고
예수님의 은혜 가운데에서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