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늘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을 가르치셨고, 그들과 함께 드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을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그렇습니다.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절대로 당시 죄인 취급을 받는 자들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면 자신들이 부정하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때 그렇게 생각하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잃은 양을 찾은 목자
이야기와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 이야기입니다.
이 두 이야기는 찾은 대상만 다를 뿐! 그 내용은
거의 유사합니다. 잃은 양을 찾은 목자 이야기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찾은 후에는 온 동네 사람을
불러 기쁨의 잔치를 벌입니다.
그리고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
온 집을 구석구석 뒤집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자 마찬가지로 잔치를 벌입니다.
이 두 이야기의 내용은 참 쉬운데!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에서는
잘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누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서
나머지 아흔 아홉마리 양을 들에 두고 찾으러
가겠습니까? 만약 한 마리 양을 찾으러 갔다가
나머지 아흔 아홉마리 양이 어떻게 되면!
늑대나 곰의 공격을 받게 된다면! 더 낭패가
아니겠습니까? 목자는 아흔 아홉마리 양과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가치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잃은 양을 찾은 후에 일어난 일과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후에 일어난 일도
현실에서는 전혀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닙니다.
둘 다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고!
또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후 어떻게 합니까?
벗과 이웃을 불러 동네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겨우 한 마리 양을 찾았는데! 그리고 겨우 한
드라크마! 오늘날로 치면 노동자 하루 품삯!
적으면 10만원 많으면 20만원 정도의 돈을
찾았는데! 목자는 그리고 돈의 주인은 잔치를
벌입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을 벌이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
누가 이런 미련한 짓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누가 이런 일을 합니까? 누가 이렇게
미련한 짓을 한다고 말씀은 전합니까?
바로 하늘나라! 하나님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누가 이 일을 합니까?
바로 우리 하나님께서! 이 말도 안 되는!
도무지 계산할 수 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그리고 온 동네 사람을 불러! 기쁨의 잔치를
벌이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여전히 선을 그으며 자신은 죄인들과 다르다며
우월의식 속에 살아가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그리고 오늘날 여전히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리고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늘 잊고 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랑! 이 계산하지 않는 사랑으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다! 오늘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계산하셨다면!
효율을 따지셨다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흔 아홉마리 양을 지키기 위해서
잃은 한 마리 양을 그냥 버려둔 목자셨다면!
우리는 지금 결코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로 잃어버렸던 한 마리 양
잃어버렸던 한 드라크마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또 다른 잃어버린 한 마리
또 다른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는 그 일에
힘을 쓰는 우리가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길!
그래서 우리의 삶에! 우리 교회에서
이 기쁨의 잔치가 끊이지 않길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