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을 통해 우리는 두 종류의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받기 위해서 의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율법교사는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는 몰라서 예수님께 물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율법교사는 영생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율법을 지켜야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알고 있었지만 그대로
살아내지는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그렇습니다. 당시 율법교사는
정답은 너무 잘 알았지만! 정작 그렇게 살아낼 능력!
실력이!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단지 그렇게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모습을 예수님께서 지적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나의 의로운 행동으로
구원에 이르려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스스로 좋은 땅에 되려고
노력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결코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우리의 행위로는 절대로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두 번째 사람은
구원받았기 때문에 의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여전히 율법교사는 예수님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지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고 다시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께서는 직접적인 대답
대신해서 한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내용은 아마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통해 우리가 늘 헷갈리는 것은!
이 비유에서 말하는 강도당한 자가 누구인가?
그리고 강도 만난 자를 고쳐 준 선한 사마리안은
누구인가? 입니다.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강도당한 자는 바로 우리입니다.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인은 우리를 아무런 대가 없이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찾아와주신 먼저 나의 이웃이 되어주신
그리스도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경험한 자로서!
이제 너희도 누군가의 이웃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고 예수님께서 도전하고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은혜받은 자로서의!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누린
자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아낼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어떤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계십니까? 율법 교사처럼 구원받기 위해 오늘도 의를
행하려 애쓰는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기꺼이 누군가의 이웃이
되어주는 그래서 그 사랑을 전하는 자로서의
그리스도인입니까?
오늘 하루! 영생을 받은 자로서!
이미 강도당한 자같은 나를 위해
가만두면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해
아무 이유 없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아끼지 않고 찾아와
살려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누군가의 이웃이 되어주는 삶을 사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