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봉독한 본문은 침례 요한의 출생을 다룹니다.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했던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가 드디어 임신했습니다. 특별히 사가랴는
제사장이었기에 후사가 더더욱 귀했고, 또한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렇게 은혜 가운데 아이를 갖게
되었고, 또 그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그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크게 될지
얼마나 기대가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이때 더더욱 감사하고 기쁜 일은 태어난 요한이
앞으로 하게 될 일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사가랴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는 구원자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아! 그 구원자가! 오실 그 길을
누가 예비할 것이라고 고백합니까? 온 이스라엘이
눈이 빠지게 기다린 메시아의 오실 길을 누가
준비한다고 전합니까?
그렇습니다. 이제 태어난 자신의 아들이 그 일을
감당한다고 합니다.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의 구원의
역사를 준비하는 자로 자신의 아들이 쓰임 받을 것이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그의 삶이 기대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 일이 결코 기뻐만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침례 요한이 결국 어떤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인지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오실 메시아를 준비하는 그 일이!
오실 구원자를 예비하는 이 일이!
결코 꽃길이 아니라 가시밭길!
누구도 쉽게 감당하지 못 할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그의 삶을 통해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런 침례 요한이 어디에 있었다고
전합니까? 아버지가 제사장이기에 침례 요한 역시
성전에 머물러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아니 그렇지 않더라고 어렵게 얻은 아들이기에
어머니 품에 귀하게 자랐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디에 있었다고 전합니까?
“빈들” 빈들은 헬라어 원어로 하면 ‘에레모이스’입니다.
뜻은 ‘버림받은 곳’ ‘고독한 곳’ ‘황막한 곳’입니다.
즉, 우리 삶에 정상적으로 필요한!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등이 모두 결핍된 곳이 바로 빈들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는 곳!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빈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빈들에 보내셨습니다.
빈들에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오실 메시아를 예비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오직 주만 바라보며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
또한 우리에게 허락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역시 반드시
빈들에 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침례 요한처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시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시간!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하루 각자의 빈들이 어디인지 찾아보기 바랍니다.
아니 오늘 나의 삶의 자리가 빈들이 되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삶을 살 수 있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