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은 슬픔의 노래로 시작해서
슬픔의 노래로 마무리 됩니다. 그렇다면! 왜 선지자는
울고 있습니까? 또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탄식하며
울라고 말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은
심판으로 온 이스라엘이 회생 불능의 상태에 이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폐허로 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습니까?
정의를 하찮게 여기고 공의를 땅에 던져버렸기 때문입니다.
힘없는 자를 짓밟고, 의인을 학대하며, 가난한 자들을
억울함 가운데 죽도록 내버려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를 보다 못한 하나님께서 심판을 작정하신
것입니다.그들을 패망에 이르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이들은 심판 가운데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모스를 통해 다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살길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바로! 여호와를 찾는 것!, 여호와를 만나는 것!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 그 한 가지입니다.
그럴 때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오늘 아모스의
외침을 마음에 새기는 자가 되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찾는 것!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임을 마음에 새겨
늘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오늘 본문을 통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선지자는 여호와를 찾으라
말하면서 벧엘로, 길갈로, 또 브엘세바로 가지 말라
명령합니다. 이 세 곳 모두는 북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가면 비참하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찾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도 않으면서!
제사만 열심히 드리는, 제물만 열심히 바치는
이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형식만 남은 그들의 종교의식을 아모스는
정면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는 전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처럼
살아가는 그들의 신앙 행태를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예배의 자리에 와서 앉아 있는 것 자체로
내 할 일 다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새벽 기도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주일 예배 열심히 드렸습니다!
저 십일조도 꼬박꼬박 했습니다!’
이 말이 아무 소용 없을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모른다’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번도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의 자리는 하나님과 대면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 한 가지 목적 말고는 다 사라져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대면하여 만나길!
그 깊은 임재 가운데 나아가길! 임재하심을 통해
오늘 하루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갈아가길!
간절히 기대하고 기도하는 자가 되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이제 곧 다시 오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우리를 한눈에 알아보는 자가 될 수 있길 온 마음 다해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