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째, ‘적당히’라는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예후를 제외하고는
모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는 말로 평가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왕인 호세아는 2절에
“다만 그 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더라”고 합니다.
이는 호세아가 온전한 신앙을 가지지는 못하였을지라도
어느 정도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망하는 나라의 마지막 왕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적당히 신앙 생활하면서
하나님께 인정받으려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윤을 내려는
세상의 원칙에 익숙해져서
영적인 문제도 동일하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당히 신앙 생활하면서
구원도 얻고 세상의 쾌락도 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적당한 신앙으로는
결단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자기 합리화에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끝까지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반면교사를 삼아야 합니다.
8, 11절에 북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물리치신
이방 사람 같이" 행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우상 숭배하는 가나안 족속을 가나안 땅에서 몰아내시고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마땅히 그들이 범한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들을 본받아 행했습니다.
왜 쫓겨났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 망하는 길을 답습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죄악으로 인하여 심판받는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로 그들과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고전 10:11)
그러므로 죄악 된 길에 선 자들의 결과를 보며
반면교사를 삼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모습을 보고 조롱하기보다 나의 모습을 점검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우상 숭배의 끝은 허망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15절에 허무한 것을 뒤따라 허망하여졌다고 말씀합니다.
우상은 인간에게 아무 영향력도 주지 못하는 ‘허무한 것'입니다.
이런 우상을 숭배하는 인간의 내면은 무엇입니까?
무엇인가 도움을 받고 행복을 얻고 안정감을 얻고자 합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우상에게
이런 도움을 바란다면 결국 그 끝은 무엇이겠습니까?
허망하여지고 공허함만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더하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도 수많은 우상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는 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우상에 대한 열심을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그러나 그 끝은 명약관화입니다.
우리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며,
세상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다른 것을 숭배하고 의지한다면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멸망의 길,
허망의 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세상이 그럴듯하게 꾸민 것들에 현혹되지 말고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고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