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할 수 없는 고난 속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첫째, 죄로 인해 통곡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고통 가운데 통곡합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네 상처
때문에 부르짖느냐”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자를 향해!
왜 상처 때문에 우느냐고, 왜 상처 때문에 부르짖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들이 정작 울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후 나단 선지자로부터 책망을 듣고
난 후 시편에서 이렇게 하나님께 구합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쫒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거두지 마소서“
그렇습니다. 다윗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징계로 인한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죄를 지어 겪게 되는 아픔보다 다윗에게 더 큰 고통은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이 떠나실까?
나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실까?였습니다.
때로 우리도 다윗처럼!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죄로 인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아니 자주 우리는 죄 가운데
무너집니다. 그래서 당연히 징계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당하기 힘든 상처로 고통 가운데 처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울부짖어야 할 것은!
나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나를 외면하실까?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실까?' 를 두려워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우리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회복하심을 노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징계하시는 분이십니다.
죄 가운데 빠진 자녀들을 하나님의 백성을 그냥 두고
보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백성을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가운데 통곡하게 하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징계로 끝이 아닙니다. 고난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반드시 평안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온전케 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의 입술에서 통곡이 나올지라도
지금은 고통 가운데 신음하게 될지라도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입술을 찬양의 입술로
감사의 입술로 바꾸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미리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먼저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당장 우리가 처한 고난, 아픔과 상관없이!
크신 하나님의 이름!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 믿음으로 미리 하나님께 감사하며
미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길 축복합니다.
셋째,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모두가 다 우상 숭배를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누구는 그럼에도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내려진 징계는 예외 없이 모두에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고난 앞에 이해할 수 없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통곡할 수도 있었습니다.
왜 나냐고 따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이들이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럼에도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앞에 선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이 말씀을 변함없이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자신의 백성을 포기하신 적이 없다는
사실! 한 번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기를
포기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시는!
그리고 우리를 자신의 백성 삼아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살아내는 우리가 될 수
있길 축복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