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6월 27일 오늘의 묵상
2024-06-27
설교일시
2024. 6. 27
설교본문
행27:1-20
설교자
안용호 목사


백부장 율리오가 죄수들을 인솔하여 로마로 가는

길은 장거리 여행이었습니다. 특히 바닷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풍랑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광풍을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이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의 사람을 따라야 합니다.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는 알렉산드리아라는 배를 탑니다. 

그런데 7절은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풍랑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입니다. 그래서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 삼아 미항이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 때 바울은 이런 말을 합니다.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10절) 10절의 '보니'라는

단어는 눈으로 본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알아차린 것입니다. 보통 금식하는 절기안 대속죄일이

끝나는 9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를 항해 위험시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죄수의 신분으로 끌려가는

바울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 선장은 자신의 항해술과 경험을 믿었습니다. 

선주는 배를 움직여야 돈을 더 버는 목적을 가진 사람입니다. 

살다가 그런 저런 이유로 우리 삶을 부추기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큰 풍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려면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배 안의 누구도 바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풍랑도 사람을 신뢰하고 세속적인 욕심을 채우려다가

겪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인간의 지혜나 능력 또는 세상에서 얻을 유익을 

주목하기보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둘째, 잠시의 불편을 극복해야 합니다.

배에 탄 사람들이 서둘러 미항을 떠나려고 한 이유를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더라."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무리한 항해를 결정한 것입니다. 살다가 잠깐의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서둘러 결정한것 때문에 위기에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잠시 후에 일어날 일을 누가 예측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미항에서 뵈닉스까지는 약 64km이니까

하룻밤이면 갈 수 있다고 예측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무슨 큰 일이 있을까 싶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한 치 앞도 볼수 없는 근시안입니다. 

그러나 위험한 상황에서 육지의 불편함이 바다의 위험보다

훨씬 낫습니다. 잠깐의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고 무리하게

결정하는 것은 인생의 풍랑을 자초하는 행위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았다"고 합니다. 남풍이 순하게 부니까 의기양양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잠시 동안의 잔잔함입니다. 

얼마 안 되어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불어왔습니다. 

순픙이 광풍이 되는 것은 잠깐 동안 일어나는 일입니다. 

광풍은 심한 태풍을 말합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미항을 떠난 결정이 잘못된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편 이후로 사람들은 바울을 따르게 됩니다. 

인생의 풍랑 속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결단은 광풍을 

헤쳐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결단이 될 것입니다. 

지금 인생의 풍랑 가운데 있다면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물으십시오.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것입니다. 


셋째, 구원의 여망을 붙들어야 합니다.

광풍은 생각보다 매우 심각했습니다. 15절은 가는

대로 떠밀려갔다고 합니다. 간신히 거루를 끌어올렸습니다.

거루는 거룻배의 준말인데 비상용으로 사용하는 돛이

없는 작은 배입니다. 배가 파선하면 거루를 타고 피할 

준비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스르디스에 걸릴 위험도 

있었습니다. 스르디스는 모래톱을 말하는데 배가 모래톱에

걸리면 꼼짝 못하고 멈추게 되고 계속 강하게 부딪치는

파도에 배가 산산조각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속수무책으로 쫓겨가면서 그래도 살려고 짐을 바다에

다 버렸습니다. 사흘이 되어도 뵈닉스에 도착하지 못한 채

배는 풍랑에 밀려 다녔습니다. 결국 배의 기구도 버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않아

깊은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은 채 배는 겨우 떠있었습니다.

2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영어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침내 우리는 구조될 것이라는 모든 소망을포기했다." 

한 마디로 이젠 죽었구나 싶었던 것입니다. 

이제 누구도 배를 다룰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죽음의 두려움만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배 안에

로마에 가야 할 하나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 곧 바울 때문에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가장 절망적인 삶의 자리에서도 구원의 빛을 비추는

하나님입니다. 불순종한 요나 때문에 배 안의 사람들이

죽을 뻔했지만 순종하는 바울 때문에 배 안의 사람들은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풍랑 속에 빠진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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