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5월 21일 오늘의 묵상
2024-05-21
설교일시
2024. 5. 21
설교본문
행9:32-43
설교자
안용호 목사


오늘 본문에 나온 배드로의 활약을 보면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불치병 환자도 일으키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려냈습니다. 이 놀라운 베드로의

행적을 통해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사도가 보여준 행적이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첫째, 주님의 능력을 나타낸 것입니다.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가에 가서

애니아라는 남자를 만납니다. 그 사람은 무려

8년간이나 중풍으로 앓아 누운 상태입니다.

그 당시에 중풍은 나이 많은 사람이 걸렸고 치료가

되지 않는 불치병입니다. 다른 말로 소망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런 애니아를 향해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34절)

그 순간 애니아가 벌떡 일어나 자기가 누웠던 자리를

정돈합니다. 침상을 정돈하게 한 것은 완전히 치유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누울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베드로가 아닙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기적을 행할 

때 주의 이름으로 기적을 이뤘습니다. 나면서 걷지

못하고 성전의 미문 옆에서 구걸하던 사람에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3:6) 그렇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소망 없는 사람 그리고 오랜 시간 중풍병을 앓으며 

소망 없는 사람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은 베드로의

능력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능력입니다. 

주님의 이름은 죄에 빠진 사람도 능히 구원합니다.

주님의 이름은 육체의 질고로 고통당하는 자를 능히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주님의 능력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의 능력을

믿는 성도를 통해 지금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신은 주님의 능력을 믿습니까? 그 능력을 믿고 

병든 자나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영혼의 구원을 이루는 일입니다.

베드로가 기적을 행할 때마다 육체의 회복과

비교할 수 없는 더 귀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주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것입니다.

애니아가 중풍병 때문에 누웠던 침상에서 일어났을 

때 룻다와 사론에 있는 사람들이 다 애니아를 보고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베드로가

죽었던 다비다라는 여제자를 살렸습니다.

다비다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사슴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로 도르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여제자를

도르가라고도 불렀습니다. 도르가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도르가의 죽음을 너무 슬퍼했습니다. 도르가가 병들었을

때 살리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겠습니까? 그런데 

그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갑자기 죽은 것이라면

혹시 다시 살릴 것을 기대하지만 도무지 살아날 것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시체를 향하여

이런 말을 합니다."다비다야 일어나라."(40절) 그러자

다비다가 일어나 앉았습니다. 마치 죽은 소녀의 손을

잡고 예수님이 달리다굼 곧 '소녀야 일어나라'(막5:41)

하실 때 죽은 소녀가 일어난 것처럼 살아났습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42절은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고 합니다. 

기적은 주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목적입니다.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과 그 기적을 목격한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셋째, 복음의 확장을 위한 활동입니다.

욥바와 룻다 그리고 사론은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

이름입니다. 바로 유대땅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짐승의 시체를 만지는 일을 매우 부정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시체를 만지는 일 하는 사람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욥바에서

묵은 곳이 바로 무두쟁이 시몬의 집입니다.

무두쟁이는 짐승의 날가죽에서 털이나 기름을 제거하여

가죽을 만드는 직업인데 천하게 여기고 무두쟁이라고

낮추어 불렀습니다. 그런 사람의 집에 베드로가 묵었다는

것은 사람의 입방아에 오를 일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부정한 것의 장벽을 깨뜨렸습니다. 직업이나 신분을

따지지 않고 복음을 전했고 예수를 믿으면 형제로 받아

들였습니다. 이것은 시대를 깨운 행동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둘로 하나를 만드시는

분입니다. 심지어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헐으신 분입니다.(엡2:14) 복음은 

사람간에 막힌 담을 헐고 화목하게 하는 능력이 있으며

어떤 사람도 품어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성도는 모든 사람을 품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면서 섬기고 돌보면서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때 죄를 짓고 

교도소에 있는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죽어 마땅한 사람도 예수를 믿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 나라는

확장될 것입니다.     

Menu
ⓒ designyeon
Members